2025. 10. 19. 04:05ㆍ카테고리 없음
가을이 되면 괜히 마음이 바빠집니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여행이 떠오르죠. 일본은 그런 계절의 빈틈을 채우기 딱 좋은 곳이에요. 가까우면서도 낯설고, 익숙한 듯 전혀 다른 풍경. 특히 가을엔 단풍이 도시마다 풍경을 바꾸고, 오래된 골목은 더 운치 있어지고, 찬 공기 속 따뜻한 온천은 마치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그냥 다녀오면 되는 여행이 아니라, 머무르고 싶은 가을을 만나게 해주는 곳. 일본이 그렇습니다.
단풍이 만드는 장면들
처음 교토의 단풍을 봤을 땐 좀 멍해졌어요. 그게 단풍 때문인지, 풍경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라시야마 강을 따라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붉게 물든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었거든요. 가을이 이런 느낌이었나 싶었죠. 니코, 다카야마, 나고야 근처 산책길들. 사람 붐비는 관광지 말고 조용한 곳도 충분히 있어요. 주젠지 호수 근처는 평일 아침이면 바람 소리밖에 안 들릴 정도로 한적하고, 다카야마는 아직도 그 시골 냄새가 남아 있어서 괜히 마음이 말랑해집니다. 그리고 이건 진짜인데, 단풍은 낮보다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녘이 더 예뻐요.
걷는 게 여행이 되는 전통거리
가을엔 바닥에 단풍잎이 수북이 쌓이니까, 어디를 걷든 분위기가 영화 같아요. 가나자와의 히가시차야가이는 정말 고요한 골목이에요. 전통 찻집, 나무 창살, 돌바닥. 말이 필요 없어요. 그냥 걷다 멈추고, 또 걷다 앉고. 카메라보다 눈으로 기억하려고 했어요. 고야산도 참 인상 깊었어요. 유명하진 않지만, 오래된 사원 사이로 걷는 길이 너무 좋았거든요. 사람도 별로 없고, 마을 전체가 '쉿' 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거기선 나도 모르게 말을 줄이게 되더라고요. 나라도 여전히 좋아요. 사슴 때문에 유명하지만, 조용한 뒷길이나 오래된 절 하나쯤 들렀다 나오는 것도 좋죠. 말이 안 나올 정도로 고요한 그 시간, 생각보다 더 많이 남아요.
온천은 가을에 진짜 다르다
온천은 사실 일본 어디서든 즐길 수 있지만, 가을에 하는 온천은 뭔가 다릅니다. 공기가 차니까,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는 그 순간의 감각이 확 살아나요. 진짜 말도 안 되게 좋거든요. 하코네는 접근성도 좋고 료칸도 많아서 늘 손에 꼽히는 곳인데, 단풍철엔 거기까지 가는 전철 타는 길도 너무 예쁘고요. 온천 들어가서 고개만 돌리면 산이 보여요. 산이 붉어요. 그거 하나면 그냥 된 거죠. 유후인은 큐슈 쪽이라 조금 멀긴 한데, 분위기가 남달라요. 온천 마을이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고, 뭔가 감성이랄까? 카페랑 소품 가게도 예쁘고, 밤 되면 조용해지고. 노천탕에서 김 올라올 때, 그 고요한 분위기 진짜 좋아요.
가을은 금방 지나가요. 가만히 있다 보면 어느새 겨울이 되고, “올해도 그냥 넘겼네”라는 말만 남죠. 그래서 저는 해마다 10월이 되면 무조건 짧은 여행을 떠나려고 해요. 일본은 가까워서 좋아요. 큰 준비 없이 훌쩍 다녀올 수 있고, 매번 다른 풍경을 보여줘요. 특히 가을. 그 계절의 색을 가장 잘 보여주는 나라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올해는 꼭 가보세요. 혼자든 둘이든, 조용한 단풍길을 걷고, 오래된 거리를 느리게 걷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잘 왔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여행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