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19. 10:09ㆍ카테고리 없음

같은 넷플릭스 안에 있지만, 한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는 눈에 띄게 다르다. 둘 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만들어졌고, 사회 문제나 인간관계를 이야기하는 방식도 비슷해 보이지만, 막상 한두 편씩 보다 보면, 대사 한 줄, 장면 하나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문화일까, 시선일까, 아니면 말하지 않는 방식의 차이일까. 넷플릭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두 나라의 감각을 비교해본다.
일본 vs 한국 드라마 전개 리듬 - 고요함과 빠른 전개 사이
일본 드라마를 보면, 처음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한 장면이 꽤 오래 지속되고, 대사는 적고, 표정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고독한 미식가>에서 주인공은 그저 식당에 앉아 조용히 밥을 먹는다. 그 안에서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침묵이 말보다 더 많은 걸 전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심야식당>도 비슷하다.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 하나하나가 매회 주인공이 되고, 그들이 남기고 가는 말, 표정, 음식의 냄새 같은 것들이 이야기의 전부를 이룬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인물도 많지 않지만, 그 여백 안에서 감정이 차오른다. 이건 사건보다 분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반면, 한국 드라마는 초반부터 감정을 건드리는 데 익숙하다. <더 글로리>는 첫 화부터 인물의 상처를 전면에 내세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청자가 인물에게 몰입하도록 만든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나 <나의 아저씨>도 마찬가지다. 등장인물의 내면을 설명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는다. 바로 드러내고, 바로 부딪히고, 바로 끌어안는다. 이야기의 리듬 자체가 다르다. 일본 드라마가 ‘스며들도록 기다리는 이야기’라면, 한국 드라마는 ‘흐름에 따라가는 이야기’다. 하나는 정적인 감정선, 다른 하나는 역동적인 전개에 가깝다.
감정 표현의 높낮이
일본 드라마는 감정을 꺼내 보이는 데 아주 신중하다. 사랑을 말하기까지 몇 회가 걸릴 수도 있고, 화가 났어도 그 감정을 외면하거나, 최대한 눌러서 말한다. 이건 연출의 특징이라기보다, 표현 방식에 대한 전통 같은 것이다. <언내추럴>이나 <기묘한 이야기>를 보면, 분명한 슬픔이나 분노의 상황에서도 인물들은 일상적인 톤을 유지한다. 그 속에 담긴 흔들림을 읽는 건 시청자의 몫이다. 한국 드라마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나의 해방일지>처럼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이야기조차 결국엔 인물들이 자신의 감정을 말로 꺼내놓는 순간이 온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괴롭다. 이야기는 그 표현의 순간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로맨스는 별책부록>, <이태원 클라쓰> 같은 드라마는 서사보다 감정이 앞서는 장면들이 많다. 주인공의 눈물, 고백, 분노가 장면 전체를 이끌어간다. 어떤 이는 일본 드라마가 절제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한국 드라마가 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그 나라가 감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닿아 있다. 일본은 감정을 안으로 가두고, 한국은 감정을 함께 나누는 쪽에 더 가깝다. 그래서 표현의 강도는 달라도, 결국 드라마가 다루는 건 똑같은 인간의 마음이다.
이야기 방식 – 현실, 환상, 그리고 질문
일본 드라마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긴장에 주목한다. <중쇄를 찍자> 같은 드라마는 출판사 직원의 일상을 그리면서도, 결국엔 ‘좋은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향한다.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같은 단편 드라마는 인간 관계의 복잡함을 정제된 대사와 연출로 표현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크고 복잡한 사건 없이도, 사람 사이의 거리감만으로 충분히 서사를 만들어낸다. 한국 드라마는 사회를 무대로 삼되, 그 위에 서 있는 사람에게 더 집중한다. <소년심판>은 법을 다루지만 결국엔 감정의 이야기다. <이태원 클라쓰>는 청춘의 분투를 그리면서, 그 안에서 부조리, 연대, 성장 같은 키워드를 펼쳐놓는다. <사랑의 불시착>처럼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도, 감정의 진정성을 통해 현실적인 이야기로 전환된다.
한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는 둘 다 인간의 내면을 이야기하지만, 그 내면에 접근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어느 날은 조용히 흐르는 음악처럼 일본 드라마를 보고 싶고, 어느 날은 울고 웃으며 감정의 파도 속에 들어가고 싶다. 그럴 때, 넷플릭스는 이 두 가지 감정의 선택지를 나란히 내어준다. 우리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지금의 기분에 맞는 이야기를 찾아간다. 그 선택의 폭이 넓다는 건, 우리가 더 많은 감정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